항공·철도 교대 근무자의 수면과 ‘중대 사고’ 와의 관계는?
공공 교통 산업의 보이지 않는 리스크는 수면 부족이다.
항공과 철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대표적인 공공 교통 수단이다. 두 산업 모두 24시간 운행 시스템을 유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대근무 체계를 갖춘다. 문제는 이 교대근무가 단지 시간대의 문제를 넘어서, 수면 부족이라는 구조적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공기 조종사, 관제사, 철도 기관사, 관제원 등은 장시간 집중을 요하는 고위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수면이 부족한 상태로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피로나 업무 효율 저하를 넘어서,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항공·철도 분야는 ‘한 번의 실수’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특수 산업군이다. 이로 인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철도안전관리지침(RSMS) 등에서도 ‘수면 및 피로관리’는 핵심 안전 관리 항목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력 부족, 비정상적인 스케줄 운영, 인지되지 않은 만성 피로 등으로 인해 여전히 사고 리스크는 존재한다. 교대근무자들은 야간과 새벽 시간대에 생체리듬이 무너진 채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와 판단력 오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보고서(2023)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발생한 항공기 내 인적 오류 사고의 약 42%가 ‘피로 누적’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철도안전공단의 자료 역시 최근 3년간 기관사 과실 사고 중 수면 부족과 관련된 사례가 3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수면 부족이 사고 원인의 핵심임을 증명하는 데이터다. 공공 교통 분야의 수면 리스크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국가적 관심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실제 사례로 확인된 교대 근무자의 수면 부족과 중대 사고의 연결 고리
수면 부족으로 인한 항공 및 철도 사고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여러 차례 발생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 인도 콜카타에서 발생한 항공기 추락 사고다. 해당 사고는 조종사가 3일 연속 야간 근무를 수행한 후, 기내에서 졸음으로 인해 착륙 각도를 착오해 기체를 추락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09년 미국 버팔로에서의 대형 항공기 추락이 있다. 이 사고는 부기장이 이륙 직전까지 숙소에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기내에서 졸음을 호소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조종사 수면 관리’가 다시금 국제 이슈로 부각되었다.
철도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고속열차 탈선 사고는 기관사의 졸음운전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기관사는 사고 당시 10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수행했으며, 사고 직전 구간 속도 제한을 인지하지 못하고 급커브를 과속으로 진입한 것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80명 이상이 사망했고, 스페인 철도청은 전면적인 교대근무 및 피로 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충돌 사고는 기관사의 수면 부족과 집중력 저하가 원인으로 밝혀졌으며,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근무 스케줄 재편과 휴게시간 확보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고들은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나 일시적인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수면 환경, 제도적 미비,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이라는 구조적 원인이 누적된 결과다. 중대 사고는 단발성 문제가 아니라, 예고된 위기가 현실로 터진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수면 부족’이라는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고 대부분은 사전 예측과 예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수면 관리 시스템의 부재는 중대한 안전 실패로 간주해야 한다.
피로관리 프로그램(FRM)과 예방 시스템의 필요성
수면 부족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무시간을 줄인다’는 접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피로 관리 프로그램(FRM: Fatigue Risk Management) 도입이 필수적이다. FRM은 근로자의 생체리듬, 수면 데이터, 근무 강도, 업무 시간대, 환경 요인 등을 통합 분석해 사고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나 대상자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수면 확보 및 근무 조정을 시행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항공사는 ICAO의 권고에 따라 FRM을 도입한 경우가 늘고 있으며, 조종사 개인의 수면 패턴까지 분석해 ‘비행 가능 여부’를 자동 평가하는 체계를 갖춘 곳도 있다.
철도 분야에서도 일부 선진국은 기관사의 수면 리듬과 피로도 지수를 수집하여, 근무 투입 전 일정 기준 이하일 경우 강제로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예방 체계는 단기적으로 인건비 증가 등의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대 사고 예방, 조직 신뢰 회복, 안전도 향상이라는 거대한 이득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항공·철도 분야처럼 국민 전체의 안전과 직결되는 공공 교통 분야는 안전 예방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더욱 크다.
대한민국은 아직 이 부분에서 선진국 대비 미비한 수준이다. 항공사의 경우 일부 대형사는 자체적인 피로 관리 매뉴얼을 갖추고 있으나, 대부분은 ‘근무시간 제한’이라는 형식적 기준만으로 피로를 관리한다. 철도공사 역시 교대 시간 조정, 휴식 보장 등의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면 시간 확보나 피로도 분석 시스템은 부족하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피로 관리 표준 매뉴얼을 제정하고, 항공·철도 전 분야로 이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대 근무자 수면 인프라 확대와 정책적 전환의 시급성
피로 관리 시스템과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 수면 인프라 구축이다. 단순한 휴게실이 아니라, 실제로 뇌와 신체가 회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수면실, 조도 조절 가능한 공간, 소음 차단 장치 등이 갖춰진 전용 수면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새벽이나 야간 비행 후, 장거리 운행을 마친 기관사들이 최소한의 질 높은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공간 확보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단지 근무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 확보와 직결된 ‘기본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수면 문화 자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근무 중 잠을 자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교대근무자에게 있어 일정 시간의 수면은 사고를 막는 핵심 예방 수단이며, 조직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전략적 행동이다. 이미 미국의 델타항공, 캐나다 국철(Canadian National Railway) 등은 수면을 업무의 연장선으로 공식 인정하고, 일정 시간의 ‘파워냅’을 제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공기업, 민간운수기업 모두 이러한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사고 후 대책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적 투자로서 수면 관리를 바라봐야 하며, 이를 위한 예산, 정책, 교육, 인프라 투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교대근무자를 위한 수면 연구소 설립, 전문 인력 양성, 수면권 보장 법제화 등도 장기적으로 함께 검토되어야 할 방향이다.
결국 수면은 개인의 권리를 넘어 국민 안전의 문제이며, 교통 시스템의 핵심 안전장치다. 항공기 한 대, 철도 한 편성의 운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탑승한 수백 명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은 수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